위기 장기화하면 취약계층 지원 더 필요한데
억대 연봉자에게도 100만 원씩 또 줘야 하나

지난 총선 때 좌우를 막론하고 퍼주기 경쟁을 했으니 첫 단추가 이미 잘못 끼워졌다. 당시 전 가구 재난지원금 지급의 명분은 시급성 때문이었다. 수급 대상을 분류하는 데 따르는 시간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한국 복지체계는 원래 소득 하위 50%를 대상으로 구축돼 있다. 이들에 대한 전달체계가 기존에 잘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시급성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위 50%에게 즉각 지원하고, 형편이 나은 나머지 중에서 국가 지원이 필요한 사람은 추후 시간을 갖고 전달 방안을 고민해도 됐다.
이번에 전 가구 지급을 주장하는 근거는 1차 재난지원금의 유산이다. 이제 와서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줄 수 있냐는 것이다. 적자국채 찍어서 14조 원 넘는 돈을 억대 연봉자에게까지 주자는 논리가 이런 식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공정과 형평의 틀에 맞추다 보면 대부분 보편적 수혜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정의와 공정이 서로 충돌할 수 있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전 가구 지급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논거는 재난지원금으로 경기 회복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전 가구 지급이 갖고 있는 정치성을 희석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의원이 지적했듯 현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려면 소비의 전달 경로가 건강해야 한다. 지금처럼 밖에서 커피 한 잔 사기도 찜찜한 상황에선 통화량을 늘려도 소비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재난지원금 같은 정부 이전지출의 경제적 효과는 원래도 제한돼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정부의 소비 재정승수는 0.85, 이전지출 재정승수는 0.20으로 추정된다. 정부 소비로 1조 원을 지출하면 국내총생산이 8500억 원 늘지만 이 돈을 보조금으로 지급하면 2000억 원 늘어나는 데 그친다는 것이다. 정부가 쓰는 돈 중 가장 가성비가 낮은 게 이전지출이다. 포퓰리즘은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고 경기가 침체하는 위기 상황에서 나타나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포퓰리즘의 토양이 비옥해진 게 사실이다. 의회가 아닌 광장에서 쏟아진 구호에 뿌리를 대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포퓰리즘이 흥한 나라들은 대부분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다. 그리스 아르헨티나가 그렇다. 논리보다는 선동이 앞선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고 반복될수록 우리 사회가 지켜줘야 할 사람들은 소득 하위계층이다. 이들을 구제하려면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씩 재난지원금을 줘야 할 수도 있다. 그러려면 재정건전성과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재난지원금으로 한우 매출이 늘었다는 소식에 보람을 느끼기보다 저소득층 기초소비가 줄지 않았다는 데 의의를 둬야 하고, 누군 주고 누군 안 줄 수 있느냐는 감정적 논리보다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려는 따뜻한 이성의 힘을 믿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지금 같은 위기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
August 31, 2020 at 01: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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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값 올리는 재난지원금은 안 된다[오늘과 내일/고기정]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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